[편집국에서] '예산 부실심의' 조장하는 적폐, 가을 정기국회 국감

입력 2017-11-08 18:16   수정 2018-03-19 11:49

올해도 어김없는 예산안 늑장·지각 심사
상임위별 시기 나눠 상시국감 논의할 때

이상열 경제부 차장 mustafa@hankyung.com



“이럴 거면 정부 예산안 제출 시기를 왜 9월 초로 앞당겼는지 모르겠어요. 국회 예산 심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데요.”(기획재정부 A과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지난 6일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429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의 종합심사에 들어갔다. 정부가 지난 9월1일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한 지 66일 만이다. 올해 예산안은 작년 9월2일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53일 만인 10월25일 예결위 종합심사가 시작됐다. 올해 예결위 심사 기간은 작년보다 열흘 이상 줄어든 셈이다.

전문성 부족, 지역 나눠 먹기, 밀실 결정…. 국회 예산 심의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다.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로 꼽히는 것이 ‘늑장·지각 심사’다. 예산안을 방치해 놓고 있다가 막판에 뒤늦게 시간에 쫓겨 예산안을 졸속 처리하는 일은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된 국회의 고질병이다.

정치권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3년 국가재정법을 개정했다. 나랏돈이 적정하게 쓰이는지 따져볼 시간을 더 충분히 갖겠다며 정부 예산안의 국회 제출 시기를 앞당겼다. 개정 국가재정법에 따라 정부는 2014년부터 3년 동안 예산안을 매년 열흘씩 앞당겨 국회에 보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작년부터 종전보다 30일 빠른 9월2일까지 국회에 예산안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의 늑장 예산 심의는 올해도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올해 예결위 심사가 작년보다 늦어진 데는 10월 초 사상 최장 추석 연휴도 영향을 미쳤다. 더 근본 원인은 연휴 직후 20일 정도 진행된 국정감사다.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은 ①각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와 ②예결위의 종합심사를 거쳐 ③법정기한인 12월2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돼야 한다. 각 상임위 예비심사가 빨리 마무리돼야 예결위 종합심사도 앞당겨질 수 있다. 하지만 각 상임위 예비심사 기간에 매년 20일 안팎의 국정감사가 겹치다 보니 구조적으로 예비심사와 종합심사도 그만큼 지연된다.

그렇다면 정기국회 기간 내 국정감사는 불가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2012년 3월 개정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2조는 ‘국정감사는 각 상위별로 매년 정기국회 이전에 30일 이내 감사 기간을 정해 실시한다. 다만 본회의 의결로 정기국회 기간 중에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정감사는 원칙적으로 상임위별로 가능한 일정을 잡아 정기국회 이전에 끝내되 예외적인 경우에만 정기국회 기간 중에 해야 한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기국회 때는 예산과 법안 심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정감사를 그 이전에 가급적 끝내라는 게 법의 취지”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정기국회 기간 중 거의 모든 상임위가 동시다발적으로 국정감사를 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10년차인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야당으로선 각 상임위가 한꺼번에 정부와 여당을 비판해 국민의 관심도를 극대화할 수 있고 여당도 야당의 공격을 특정 기간에만 한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일종의 정치권 ‘야합’으로 매년 국정감사가 근거법 개정 취지와 정반대로 시행된다”고 했다.

한국의 가을 정기국회 국정감사는 외국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여야 간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해 ‘맹탕’이란 비판마저 듣는다. 무엇보다 예산안의 부실 심의를 구조화하는 일종의 ‘적폐’로 작동하고 있다. 법 취지를 살려 상임위별로 시기를 나눠 연중 상시 국감을 하는 방안을 정치권이 진지하게 논의해볼 때다.

이상열 경제부 차장 mustaf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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